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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한글날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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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10-10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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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이보다 한거 먹어.”
추석에 밥을 많이 먹는 사람더러 소처럼 먹는다고 놀리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소는 자기보다 ‘많이’ 먹는다는 건데, ‘한거’는 경북 의성에 할머니가 쓰던 말이랬다. 듣고 보니 한글 할 때 ‘한’과 통한다. 한글, 한가위, 할머니에 들어 있는 ‘크고 많다’는 뜻의 한이다.
한글날을 기념하는 책을 만들면서 한글 생각을 한거 했다. 출판에서는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의 지배계급성을 비판하는 역사서가 나왔고 박완서 소설에서 캐낸 우리말 낱말책이 인기 있다.
한글날 100주년이다. 1926년 조선어연구회는 가갸날이라고 이름하여 ‘훈민정음 반포 8회갑식’을 치렀다. 1446년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는 <세종실록>에 따라 60년인 회갑을 여덟 번째 치른다는 셈이었다. ‘언문’이라는 낮춤말을 정음, 우리글, 한글로 바꿔 쓰자는 논의가 이어졌다. 우리가 잘 알듯 한글이 앞섰고 가갸날, 정음날도 한글날로 모였다.
100년 전을 돌아보면 그처럼 왈가왈부가 많았다. 한글의 근대사를 서술하는 최경봉의 <한글 연대기>에 빼곡하게 실린 이야기들이다. 1926년 11월 황해도 사리원에서 열린 한글 강연회는 밤 11시까지 이어졌다. ‘의미심장한 가갸날 축하회’라는 기사에 따르면 그날 사리원 청년들은 한글의 운명이 민족의 운명임을 자각했을 법하다. 그런데 이듬해 국어학자 홍기문은 한글날을 “문맹 퇴치의 의미로는 기념할 만하나, 조선 혼, 조선 정신 운운하기 위한 것이라면 반대 배척”하고 싶다는 칼럼을 썼다. 한글을 널리 쓰는 것과 조선인이 잘되는 것은 별개라는 강한 주장이었다.
한글날이 오면 한국인은 우리말을 돌아본다. 외래어를 순우리말로 고치고 잘 쓰이지 않는 말을 발굴한다. 문자로서의 한글을 들여다보자면 곧 추상적이고 어려워지기 때문에, 언어로서의 한국어로 넓혀서 전통을 돌아보기란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나는 한글 이야기가 ‘우리말’에 그치는 데 위화감이 들기도 한다. 한글은 정인지가 선언했듯 “바람 소리, 개 짖는 소리”에서 먼 나라 말까지 표기할 수 있어서 좋지 않나.
국어학자 최경봉은 한글날 뻗어나오는 생각거리를 정돈할 하나의 관점을 준다. 한글을 업신여기고 억압한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온 한국인에게 한국어·한글은 떼려야 뗄 수 없다. 한국어·한글·한국인이라는 ‘운명의 삼각형’의 존재를 인식할 때, 운명을 넘어설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한글날에는 한국어·한글과 한국인을 구분해 보면 어떨까? 이는 언어와 국적을 일대일 대응시키는 ‘모국어’ 개념과 거리 두는 일이기도 하다.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는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외국어’라는 말을 피한다고 한다. 학습자 중에서 재일 한국인에게 한국어는 외국어가 아닌 조국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가 모어이지만 국적이 한국인 자이니치 3세 작가 김이향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방인이 쓰는 낯선 한글을 환영할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용기란 낯선 언어를 고치고 드는 것도, 귀여워하며 끌어안는 것도 아니니 나는 한국어로 자기 뜻을 말하는 사람을 천천히 마주 대한다.
새만금국제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전북지역 환경단체가 지자체와 정치권의 재판 관련 발언을 ‘재판 압박’이라며 사업 백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공항 건설 대신 서해안 철도망을 확충하고 수라갯벌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새만금 개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8일 성명을 내고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과 이원택 전북지사 등이 잇따라 재판부를 겨냥한 정치적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며 재판 관련 발언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단체는 “신공항이 없으면 새만금이 맹지가 된다는 주장은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은 정치적 수사”라며 서울고법에 국토교통부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유지해달라고 주장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9월 새만금국제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1심에서 조류 충돌 위험에 대한 검토와 환경영향평가 등을 문제 삼아 기본계획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 선고는 오는 14일 예정돼 있다.
단체는 신공항의 경제성과 항공 수요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본계획상 비용 대비 편익(B/C)이 0.479에 그친다는 점을 들어 사업 타당성이 낮다고 했다. 또 2500m 활주로는 장거리 노선 유치에 한계가 뚜렷하고 인근 공항과 항공 수요가 겹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대안으로는 철도 중심의 광역교통망 확충을 제시했다. 서해안 철도망을 기존 철도와 연결해 인천공항과 무안공항의 접근성을 높이고, 군산공항과 고속철도를 연계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만금 기본계획(MP) 변경안의 개발 방향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탄소중립을 주요 목표로 내세우면서 해양 탄소흡수원인 블루카본이자 법정보호종 서식지인 수라갯벌을 매립하는 것은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이 지사가 약속한 ‘사회적 대화 추진단’을 통해 도민 참여 공론화를 즉각 시작하라”며 “인프라 연계로 얻는 편익과 갯벌 훼손에 따른 환경 비용을 투명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⑨편에서 이어짐)
“이다혜씨.” 누군가 불렀다. 경찰이었다. 함정수사에 걸려든 것이었다. 같이 약을 하던 남자는 경찰에 붙들리자 다혜를 포함해 이름 몇 개를 술술 불었다. 수사에 협조한 이력은 나중에 벌을 감경받을 수 있는 요소가 된다. 뒤돌아보지 않고 달리던 다혜의 약물 생활에 첫 브레이크가 걸리는 순간이었다.
다혜도 수사에 협조했다. 수사에 협조적이었던 덕분에 다혜는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구속은 면했다. 죽도록 약을 끊고 싶었지만 끊을 수 없었고, 그래서 갈망하던 것을 주사하자마자 엉엉 울곤 했던 시간과 이별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당연히 또 약 생각이 났다. 범죄자가 된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다혜는 경찰과의 약속을 어기고 도주했다. 머잖아 경찰이 다시 찾아왔다. 또 도망쳤다. 그때부터는 일정한 거주지에 머물 수가 없었다. 도피생활의 시작이었다. 일상으로부터, 경찰로부터, 죄책감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쳤다. 지하철역 화장실, PC방, 모텔, 어디서든 눈을 붙였다. 전국을 떠돌다가 4년이 흘렀다. 종착지는 서울의 한 외곽 동네였다.
다혜의 곁에는 항상 함께 약을 하는 남자가 있었다. 좋지 않은 남자들이었다. 돌이켜보니 약물, 게임, 도박 등 중독자가 많았다. “긍정적 감정만 빼고 모든 감정을 다” 느끼며 살던 때였다. 스스로를 사랑해본 적이 없기도 했다. 그랬던 다혜의 옆자리는 어딘가 뒤틀린 남자들이 채웠다. “처음에는 꽤 괜찮아 보였는데 알고 보니 쓰레기인 사람을 쏙쏙 잘도 골라 만났다”고 말하며 다혜는 웃었다.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같이 약을 하면서 영영 행복할 수는 없다. 다혜도, 다혜의 주위를 보아도, 약을 하는 남자와 약을 하는 여자가 함께 살면 그 끝은 거의 반드시 파국이었다. “처음에는 ‘와, 어쩜 이렇게 잘 맞을 수가 있지? 얘는 마치 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 같아’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약이 주는 환락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거죠. 나중에는 잡아먹을 듯이 싸우게 돼요. 주변에 같이 약 하던 사람들도 보면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경우가 엄청 많았어요.”
다혜도 얻어맞았다. 같이 살던 남자는 어느 순간 돌변하더니 툭하면 폭력을 썼다. 꽁꽁 언 물병이 날아와서 다혜를 때렸다. 어떤 중독자들은 경찰이 찾아올 것을 대비해 잭나이프를 갖고 다닌다. 그 칼이 다혜를 향해 휘둘렸다. 어릴 적 엄마와 아빠가 싸울 때 날아다니던 칼을 떠올렸을까. 응급실에 간 날도 여럿이었다. 남자가 제 분을 못 이겨 온 집안을 뒤집고, 그걸로도 모자라 다혜를 손찌검하고 나가떨어져 잠이 들면 다혜는 방 이곳저곳에 튄 자신의 피를 닦았다. 그러고 나면 몸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울었다. 그런데도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거기에 약이 있기 때문이었다. ‘죽어야 끊겠구나’. 다혜도 수많은 중독자들이 이르는 그 결론에 다다랐다. 세정제를 들이켰다. 26살의 일이었다.
천만다행으로 다혜는 살아났다. 눈을 뜨고 한 첫 생각은 ‘한 번만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엄마 집으로 갔다. 남은 약은 차마 버리지 못하고 들고 왔다. 수중에 있는 약을 엄마에게 맡겼다. 분명 머잖아 약을 찾으러 나설 것이었다. 그때 집을 나가게 두지 말고, 차라리 맡겨놓은 약을 달라고 부탁했다. 일단 다혜를 약에서 떨어트리는 게 우선인 엄마는 무조건 알겠다고 하고 약을 받아 숨겼다.
얼마 안 가 다혜는 약을 내놓으라며 난동을 피우다가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어느 겨울날이었다. 시골 동네인지라 앱을 켜봐도 택시도 약도 없었다. 눈보라를 맞으며 동네를 몇 바퀴 돌았다. 돌다 보니 추워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게 한 달, 두 달, 세 달… 쌓이더니 6년이 됐다.
다혜는 약을 끊기 전 자신이 “동네에서 유명한 미친년이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다른 애는 끊어도 쟤는 절대 못 끊는다”고 했다. “그러다 죽는다”는 말도 몇 번 들었다. 지금의 다혜에게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약을 한 달 쉬고 나니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 달이 지나니 새로운 걸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달째에는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엄청나게 많은 중독자들이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중독 상담을 공부하기로 했다. 넷째 달에는 학교를 알아봤다.
공부가 쉽지 않았지만, 하루이틀 작은 과제들을 수행하고 나니 성취감이라는 게 뭔지 알게 됐다. 이룬 것들이 생기니 다음 과제를 성공하고 싶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갈 곳이 있다는 게 회복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알게 됐다.
회복은 엄마와의 관계를 다시 쌓는 과정이기도 했다. 어릴 적 엄마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다혜도 엄마에게 못 할 일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4년 동안 도피생활을 하면서 돈이 필요할 때만 간간이 엄마에게 연락했다. 엄마가 돈을 보내주면 약을 샀다. 경찰 연락을 받은 엄마는 다혜가 약물 중독 문제가 있다는 것, 경찰에 쫓기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았다. 어디서 뭘 하고 지내는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돈을 보내달라는 연락마저 끊길까 봐 눈물을 삼키며 돈을 보냈다는 것을 다혜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엄마에게 남은 약을 맡긴 것도 미안했다. “어떤 엄마가 자기 손으로 딸한테 약을 주겠어요.”
엄마도 서툴지만 다혜에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자기 설움, 자기 연민만 아는 것 같아 두고두고 서운했었다. “딸, 네가 많이 서운했겠다. 미안해.” 엄마한테 메시지가 온 날에는 잠도 못 자고 밤새 울었다. 다혜는 중독에서 회복한다는 것이 비단 약을 끊는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총체적으로 재건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다혜도 다혜만의 12단계를(⑧편 참조) 치러낸 것이다.
“마약은 생각지도 못하던 것들까지 다 끌어모아 어떻게든 잃게 만들었다.” 다혜를 처음 만난 2023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가진 이야기의 무게에 끌린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점점 달라지는 다혜의 모습에 마음이 갔다. 3년 동안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더 단단해져만 가는 다혜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어떻게 사랑하면 되는지 알아가는 다혜가 사랑스럽기도 했다.
“예전에는 날 위해서 뭔가를 한다는 생각이 낯설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하나도 몰랐어요. 내가 나를 알고, 나를 돌보고, 나랑 친해지고, 나만의 이야기가 있고… 그런 게 자존감 아닐까요?” 혼자 노래방에서 네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거나,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얼마 전엔 고양이 집사가 됐다. 고양이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계획도 생겼다. 다혜는 최근에는 학업을 마치며 졸업장과 학업 우수상을 함께 받았다. 스스로를 구한 다혜는 이제 다른 중독 당사자들을 살리는 일을 꿈꾸고 있다.
다시, 다혜는 귀한 사람이다. 훌륭하게 회복해낸 중독 당사자여서 귀하고, 재활 모임이나 공동체에서 보기 드문 여성 당사자여서 귀하고, 다른 중독자들을 도울 준비를 마친 이여서 귀하다. 아직도 많은 여성 중독 당사자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홀로 싸우고 있다. 그 많은 여자들이 다 어디로 가서 보이지 않는다. 머잖아 다혜가 다른 여자들을 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혜도 그 과정에서 나날이 새로 살아나기를, 더 밝고 충만해지기를 두 손 모아 바란다.
(⑪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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