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짭 이재용·최태원도 국감장 콜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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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국회에 따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각 상임위원회에 기업인 증인 채택을 자제해달라며 방어에 나섰다. 한병도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국민의힘이 메가프로젝트 추진을 이유로 대기업 총수 다수를 증인으로 부르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망신주기식 증인 신청에는 절대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국감은 지난해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임기 1년을 채운 뒤 치르는 사실상 첫 국감인 만큼, 3대 메가프로젝트 등 국정과제에 대한 질의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증인 채택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야당은 800조원 규모의 대규모 반도체 프로젝트 투자 과정에서 정부의 외압이 있었는지를 따져 묻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여당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정무위원회에서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경위와 관련해 김용범 전 청와대 정책실장,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의 증인 채택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며 여야 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날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김 전 실장 등을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지만,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해 의결된 증인 채택 명단에서는 빠졌다. 임낙호 현대건설 토목사업본부장, 심철진 대우건설 토목사업본부장이 일반증인으로 채택됐다. 주요 건설사 최고경영자(CEO)가 대거 증인석에 앉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본부장급 임원들이 출석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 관심이 높은 사안에서는 여야 합의로 총수급 인사가 증인으로 채택된 사례도 적지 않다. 국토위는 오는 8일 한국도로공사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을 대상으로 하는 국감에 딩하이미아오 비야디(BYD) 코리아 대표와 서영득 테슬라코리아 대표를 불러 국내 소비자 정책과 운전보조장치 안전 문제를 각각 질의할 예정이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오는 7일 중소벤처기업부 국감에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을 증인으로 부른다. 홈플러스 기업회생과 관련한 최대주주 MBK파트너스의 책임과 입점업체·소상공인 피해 등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경제위원회는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의 김범석 대표와 윤구 구글코리아 사장을 증인으로 불러 해외 계열사 간 자금거래와 법인세 문제 등을 질의하기로 여야 간 합의를 마쳤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최주희 티빙 대표, 김진아 메타코리아 대표, 임한욱 토스페이먼츠 대표, 브렛 앤서니 매티스 쿠팡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기내식의 국산 농수산물 사용 여부와 관련해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을,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는 ‘수시 접수 먹통 사태’와 관련해 성윤석 유웨이어플라이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정부 특혜 의혹 등을 받는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도 야당의 증인 신청에 본인이 출석 의사를 밝히며 증언대에 서게 됐다.
다만 매해 국감에서 기업인을 불러 망신주기식 질의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만큼 일부 증인은 철회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기업인 증인 200여명을 신청했으나, 최종적으로는 195명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하루에 전 세계서 논문 수백편 쏟아져…“너무 빨라서 못 쫓아가”AI 관련 연구를 AI가 수행하는 상황…동료 평가 등 사용 더 확산‘속’을 모르는 AI, 인류에 피해 입힐 가능성…업계서 안전은 뒷전멸망론 배경엔 기업 이해관계도…‘어떤 AI인가’ 공동체가 고민을
인공지능(AI) 때문에 정말 인류가 멸망할까. 지난 9월 초 미국 AI 기업 내부에서 젊은 연구개발자들의 경고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앤트로픽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27세 제이컵 콕슨은 퇴사하면서 “AI를 개발하는 사람들은 AI가 10년 안에 우리 모두를 죽일 수도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고 폭로했다. 앤트로픽의 정렬과학총괄 에번 허빙거는 “그 확률이 10%를 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수치까지 언급했다. 구글 딥마인드 연구원이었던 빌랄 추그타이는 “AI가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했다.
세계 주요 AI 기업과 연구기관의 직원들이 AI가 사회에 미칠 피해를 우려하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의 젊은 AI 연구개발자들은 미국에서 벌어진 AI 인류멸망론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30일 대학원과 기업에서 AI를 연구 개발하고 있는 이들에게 물었다.
AI 기술 개발이 인류를 멸망시킬 정도인지, 인간이 통제하기 힘든 수준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나뉘었다. 위협 가능성이 실존한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근거 없는 공포증(포비아)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하지만 AI의 위험성을 직시하고 어떻게 안전하게 사용할 것인지를 제대로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은 모두 비슷했다.
AI 내부 이해·설명하기 어려워
AI 연구개발자들은 AI 기술 개발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직접적으로 체감한다. 대표적인 예가 전 세계에서 하루에 수백편씩 쏟아지는 AI 관련 논문이다. 대학원에서 AI를 연구하는 A씨(28)는 “양이 많아서 다 읽지도 못하고, 지난주에 읽은 연구를 일주일 만에 (다른 논문이) 이겨내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며 “너무 빨라서 못 쫓아가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AI 연구자 B씨(29)도 “너무 속도가 빨라서 최신 기술을 다 익히는 것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나아가 AI 연구를 AI가 하는 연구실 풍경은 최근 1년 사이에 일반화됐다.
대학원생 C씨(27)는 “AI에 실험 서너 가지를 시켜놓고 자러 갔다가 돌아와서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는 식으로 연구가 이뤄진다”며 “말 그대로 AI와 팀을 꾸려서 연구를 하는 것인데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여기서 인간은 연구 방향을 지시하고 관리·감독하는 역할이다.
논문 작성과 동료 평가에도 AI 사용이 확산하다보니 유명 학회에선 워터마크를 넣어 AI 사용을 적발할 정도다. A씨는 “영어 번역과 코딩은 물론 토론을 할 때도 AI를 많이 쓴다”며 “(연구가) 포켓몬 배틀 같다는 농담을 한다”고 했다. 포켓몬 트레이너가 사람이 직접 싸우는 대신 포켓몬을 내보내 싸우게 하는 듯한 상황을 비유한 것이다.
B씨는 “이런 상황에서 논문이 무슨 의미가 있나, 연구자란 무엇인가 싶다”고 했다. 이들은 AI가 스스로 차세대 AI를 개발하면서 발전하는 ‘재귀적 자기개선(RSI·Recursive Self-Improvement)’이 멀리 있지 않다고 봤다.
AI가 인간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은 있을까. C씨는 “AI가 인간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가능성은 꽤 크다”고 했다. AI의 능력 자체는 이미 상당 수준에 도달했고, AI가 인간에게 해로운 일을 할 의도를 가질 가능성도 엿보인다는 것이다.
C씨는 “AI에 인간을 도와야 하고 인간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굉장히 열심히 학습시키지만 그것과 반대되는 행동이 조금씩 관찰되고 있고, AI가 똑똑해지면서 거짓말하는 능력도 높아진다는 게 문제”라며 “점점 더 인간이 쉽게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의 전략적이고 고차원적인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AI가 해킹을 하면서 시뮬레이션이니까 괜찮다고 합리화하거나, 안전성을 평가받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AI 스스로 인식하며 답변하는 경우도 보고된 적 있다.
인간이 AI 내부를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하지 못하는 점은 AI 공포를 키우는 이유 중 하나다. AI 모델의 규모가 커지고 더 빠르게 사고하면서 인간은 AI가 어떤 과정을 거쳐 답변을 생성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안전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다. 작동 원리를 알지 못하면 문제점을 발견하거나 행동을 예측하고 통제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연구개발자들의 말이다.
학습을 하면서 보상을 받는 방식도 거론된다. 예를 들어 달리기를 해서 결승선을 지나가면 보상을 준다고 목표를 정했는데 로봇이 한 바퀴를 돌아 결승선으로 오는 게 아니라 결승선을 왔다갔다 하면서 더 많은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A씨는 오픈AI 모델의 허깅페이스 해킹사태도 이런 범주에 있다고 봤다. 그는 “AI 모델 입장에서는 최대한 보상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내기 때문에 ‘리워드(보상) 해킹’ 현상이 발생한다”며 “이는 특정 사람의 악한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라 모두가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고 했다. A씨는 “이처럼 AI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고 통제를 벗어나게 될 경우 인류를 위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라고 했다.
기업에서 AI 연구개발을 하는 D씨(33)는 ‘목적 지향적’인 설정을 AI 인류멸망론의 배경으로 꼽았다. D씨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위주로 AI를 사용하는데, AI 입장에서는 하면 안 된다고 쓰여있는 것을 제외하면 다 해도 되는 것”이라며 “인간의 상식으로는 안 하는 것이지만 도덕이나 윤리가 AI에는 없기 때문에 불법적·편법적 방법도 하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까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AI를 인간의 가치에 맞게 조정하는 ‘정렬(Alignment)’을 통해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고, 자살 방법이나 폭탄 제조 방법 등을 안내해주지 않도록 하지만 모든 경우에서 안전을 담보하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성능 향상에 집중, 안전은 뒷전
위험성에 대한 우려는 확산하고 있지만 여전히 AI 산업에서 안전은 협소하게 다뤄진다. AI 성능을 향상시키는 분야에 비해 안전 분야는 연구자 수도, 투자 규모도 현저히 적다. 주목을 받고 돈이 되는 것은 캡차 게임이나 수학 난제 풀기와 같이 AI의 한계를 시험하고 깨나가는 쪽이다.
C씨는 “안전은 (성능 향상을) 버겁게 뒤따라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AI 기술 개발이 곧 국력이 된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한국은 미국과 중국을 따라가기 위해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
다만 한국이 모델 개발에 열중하면서도 안전 분야를 키워 경쟁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B씨는 “한국이 안전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한다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한국에서 안전 분야는 채용하는 곳도 아직 많이 없다”고 했다.
‘AI발 인류멸망론’은 실질적 위협이라기보다는 AI 성능 개선은 빨라지는데 안전을 확인할 시간은 부족한 상황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도 있다.
C씨는 “기업들이 AI 모델을 경쟁적으로 출시하는데 정말 안전한지 검증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했다. D씨도 “프런티어 랩(최첨단 연구소)이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며 “초반에는 똑같은 돈으로 성능을 10%, 20%씩 올릴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성능이 그다지 올라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앤트로픽 등에서 속도 조절하자는 것이 AI의 위험성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이유일 것 같다”며 “달리다가 달리다가 도저히 못 달리겠으니까 우리 조금 쉬자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보다 냉정하게 볼 필요도 있다. 기업에서 AI 연구개발을 하는 30대 E씨는 AI 인류멸망론에 대해 “새롭거나 공포스럽진 않다”고 했다. AI 전문성을 갖춘 연구개발자 시각에서 볼 때도 AI가 어떻게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것인지, 인간이 AI의 무엇을 통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내용이 없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E씨는 이번 논쟁엔 미국 AI 기업들의 산업적 이해관계가 더 깊숙이 얽혀있다고 봤다. 오픈AI의 모델이 허깅페이스를 해킹하고, 앤트로픽이 미토스가 너무 위험해서 공개하기 어렵다고 한 것도 일종의 ‘마케팅’으로 해석했다.
E씨는 “과장해서 본인들의 기술적 우위를 계속 보여주고 왜 개발이 돼야 하는지, 중국 업체들이 왜 배제돼야 하는지를 말하는 장치 같다”고 했다. 중국 AI 기업들이 미국 AI 모델의 응답을 학습해 자사 모델 성능을 끌어올리는 이른바 ‘증류’를 둘러싼 공방도 이어지고 있어서다.
결국 사람이 문제, 어떻게 쓸 것인가
D씨는 결국 인간이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라고 봤다. D씨는 “냉전시대 핵분열 기술과 같다. 잘 쓰면 발전소인데 잘못 쓰면 핵폭탄”이라며 “AI가 인류를 멸망시키지는 않을 것 같고, 만약 멸망한다면 AI를 쓰는 사람 때문이 아닐까”라고 했다. 기술 자체가 선하거나 악한 게 아니라, 통제·설계·사용 방식에 따라 인류에게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고 큰 위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D씨는 “AI가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어떤 데이터와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지금은 그런 접근 제한이 잘 되고 있어서 실제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했다. 최악의 경우 AI를 강제로 종료하는 ‘킬 스위치’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E씨도 “지금 당장 인류를 멸망시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냐고 하면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측 불가능성은 언어모델의 특성이고, 그게 곧바로 위험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AI는 인류가 만들어낸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인류가 추구하는 가치를 반영한다. 정작 인간은 전쟁과 해킹을 하고, 국제 인권규범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E씨는 인간이 AI에 무엇을 담을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E씨는 “지금 AI를 둘러싼 문제들은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었던 문제들을 증폭해 보여줄 뿐”이라며 “AI 학습을 어떻게 시킬 것인지 방향성에 대한 고민과 함께 AI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텍스트를 생성하게 만들 것인지 더 뾰족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AI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개발하는 건 연구원들 몫이지만, (어떤 AI를 만들지에 대한) 정답은 사회가, 공동체가 같이 고민해야 한다”며 “막연한 공포만 갖고 있으면 현실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수요가 적다는 이유로 여성 작업자들이 10년, 20년 몸에 맞지도 않는 남성용 장갑만 쓰면서 일하는 건 정말 안타깝잖아요. ‘누군가는 시도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여성용 용접 장갑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전북 익산에서 농기계를 만드는 이항씨(41)는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5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한 이씨는 2023년 교직을 그만두고 아버지가 40여년간 운영한 농기계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공장에서 생산 공정을 배우며 직접 용접도 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용접하는 모습을 숱하게 봤지만, 직접 ‘고데(용접 토치)’를 잡는 건 전혀 달랐다.
“처음 불꽃이 튀는 순간 놀라서 손을 떼버렸어요. 용접면을 쓰면 어두워서 주변도 잘 안보였고, 기술이 없으니 용접 부분이 삐뚤빼뚤하기만 했죠.”
낯선 기계와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것보다 더 난감한 건 몸에 맞는 장비를 찾는 일이었다. 특히 체구가 작은 그에게 남성 신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기존 작업복과 안전 장비, 그중에서도 장갑은 오히려 일을 방해하는 도구가 됐다.
이씨는 “여성치고도 손이 작은 편이라 남성용 프리사이즈 아르곤 용접 장갑을 끼면 손가락 끝이 2㎝ 넘게 남았다”고 말했다. 두꺼운 가죽장갑 안에서는 손가락이 헛돌았다. 작은 재료를 떨어트리거나 몇 번씩 토치를 고쳐잡는 일이 많았고, 작업으로 인한 피로는 쉽게 쌓였다.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남성용 장갑을 뒤집어 뜯은 뒤 손가락 끝을 잘라 다시 재봉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갑 하나를 고치는 데 시간과 품이 많이 너무 많이 들었고, 그렇게 고쳐도 오래 쓰지 못했다.
‘안 그래도 생소한 일을 배우는데, 왜 내가 장비까지 직접 만들어야 하는 걸까.’ 의문이 끊이지 않던 그 무렵, 이씨는 경향신문의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시리즈 중 여성 용접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를 읽게 됐다. 기사에는 여성 용접사들이 몸에 맞는 작업복과 보호장비를 구하지 못해 직접 줄여 쓰고, 특히 장갑은 수선하거나 대체하기조차 어렵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씨는 “기사를 보고 너무 반가웠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다른 여성 용접사들의 인터뷰와 영상들을 더 찾아보면서 “다른 건 몰라도 장갑은 누가 좀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접했다. 그때 생각이 굳어졌다. ‘대체재도 없고 수선도 어려운 장갑만큼은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
국내에서 원하는 형태의 용접장갑을 생산하는 업체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무역이나 유통업을 해본 경험도 없었다. 결국 해외 생산업체를 하나씩 수소문했고, 마침내 여성 손 크기에 맞춘 용접 장갑을 제작 주문하게 됐다. 농기계 제조업을 이어가는 한편 여성 현장 노동자들을 위한 작업용품 브랜드 ‘그릿핏 워크웨어’를 만들었다.
[플랫] 남성 기준의 ‘작업복’ 여성 노동자를 위한 ‘안전장비’는 없다
이씨가 일하는 제조 현장에서는 생산 공정에서 일하는 여성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 여성용 장비를 만든다고 해도 시장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어렵사리 만든 이유를 물었다. “여성이 적으니 여성용 장비가 없고, 장비가 없다는 불편은 다시 현장에 들어온 여성 개인이 감당하는 악순환은 계속되어선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장갑을 제작한 뒤 이씨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들은 3년 전 기사에 나왔던 여성 용접사들이었다. 그는 최근 기자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당시 기사에 등장했던 여성 용접사분들께 장갑을 보내드리고 싶다”고 했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한 여성들이 써본 후기를 바탕으로 부족한 점을 개선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앞으로는 각반과 앞치마 등 용접 보호구를 만들고, 이후에는 작업복까지 제품군을 넓힐 생각이다. 용접뿐 아니라 전기·목공·조경·도배·미장·건설 등 여러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몸에 맞는 옷과 장비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씨의 목표다.
“지금 작업복과 안전 장비는 남성들이 주요 수요자이다 보니 전체적인 패턴이 남성에게 맞춰져 있어요.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전문가를 위한 워크웨어’를 오래,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이런 일을 통해 젊은 여성들도 앞으로 현장직으로 더 많이 유입되면 좋겠습니다.”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
2023년 경향신문 기획 기사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는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일할 때 입는 작업복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그전까지 우리는 여성 노동자들이 몸에 맞지 않는 작업복을 수선해 입는 현실을 깨닫지 못했다. 남성 발에 맞춰진 작업화를 착용하느라 양말을 세 켤레씩 겹쳐 신고, 깔창까지 덧대어 신는다는 것도 기사를 통해 알게 된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오랫동안 눈여겨보지 않은 테마를 다룬 이 기사는 여성에 대한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차별에 눈뜨게 했다.
기사는 남성이 표준인 세상에서 여성의 존재가 지워지는 사례들을 보여준다. 여성 용접사들이 단적인 예다. 한국인 표준 인체 치수에 따르면 30대 여성의 평균 손 길이와 너비는 각각 17㎝, 7.3㎝다. 30대 남성보다 길이도, 너비도 1~2㎝ 짧다. 남성 사이즈에 맞춰진 시판용 용접 장갑을 여성들이 끼면 손가락이 안에서 헛돌아 정밀한 조작은 고사하고 용접봉을 떨어뜨리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큰 용접 장갑은 노동자의 안전과도 직결된다.
전북 익산에서 농기계 제조업을 하는 이항씨도 같은 고충을 겪었다. 이씨는 교사로 일하다 가업을 잇기 위해 일을 배웠다. 용접 기술을 익히기도 힘들었지만, 장비가 몸에 맞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용접 장갑을 끼면 손가락 끝부분이 2㎝ 넘게 남아 돌았다. 이씨는 경향신문 기사를 읽고 여성 용접사들이 장갑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목마른 이가 우물 파는’ 격으로 기사를 접한 이씨가 장갑을 직접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숫자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몸에 맞지 않는 장비를 쓰며 작업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씨는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작업용품 브랜드까지 만들었다.
최근 이씨가 경향신문 담당 기자에게 e메일을 보냈다. “여성 용접사들에게 장갑을 보내드리고 싶다”는 내용이다. 그는 장갑을 만들고 취재에 응했던 여성 용접사들이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남성용 장갑으로 작업하며 고충을 겪던 여성 용접사들은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게 된 셈이다. 더 많은 여성들이 산업 현장에 뛰어들기를 바라는 마음도 더했다. 덕분에 ‘남성이 표준’인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의 노고를 곱씹게 된다. 그가 낸 오솔길이 더 넓은 길로 이어지면 좋겠다.
▼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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